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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우리나라 언론 보도에서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죠.

바로 관계자나 당국자처럼 익명의 취재원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물론 취재원을 보호하려면 부득이 이름을 밝히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자의 취재 편의 때문에 아니면 언론을 이용해 보려는 취재원의 의도 때문에 익명으로 보도가 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남발되는 익명 보도,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구영희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리포트>

지난 12일, 난데없이 싱글세 논란이 화제가 됐습니다.

<녹취> 매일경제 11.12. 12면 : "보건복지부 고위 관계자가 1인 가구에 세금을 매기는 방안을 언급했다..."

한국의 저출산 문제가 개선되지 못한다면 정부도 싱글세 부과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매일경제가 익명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처음 쓴 이 기사를 다른 인터넷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싱글세는 검색어 1위에 오를 정도로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녹취> YTN 12일 뉴스 : “네티즌 댓글도 뜨거운데요. 혼자인 것도 서러운데 세금까지 내냐며 분통을 터뜨리는 분도 있는가 하면, 박근혜 대통령부터 싱글세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댓글에도 많은 분들 공감하고 있습니다.”

논란이 일자 보건복지부에서는 싱글세는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농담으로 한 말을 기사화 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에게 혼란을 준 데 대해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정부는 해명으로 끝났고, 발언의 당사자는 익명으로 책임을 피했습니다. 해당 신문은 오히려 주목받은 기사라고 높이 평가했습니다.

<녹취> 11.15 매일경제 30면 : "싱글세가 저출산 해법?"

지난 한 주 동안 소셜 네트워크서비스상에서 가장 주목받은 매일경제 기사는 싱글세에 관한 기사였다

싱글세 논란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정부 정책의 익명 보도는, 신중해야 합니다.

<인터뷰>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정부 입장에서는 사실 아주 가벼운 언론플레이로 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하지 않는 그런 여론을 살피는 하나의 방편으로도 활용할 수 있는 거죠. 때론 기자들이 알면서도 그렇게 속아주는 경우도 있고, 모르고 그것을 대서특필하는 경우도 있고요."

대통령의 개헌 불가 발언 이후인 지난달 16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개헌 논의의 봇물이 터질 것이라고 말해 큰 파장이 있었습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대표를 비판했습니다.

< 녹취 >중앙일보 10.22 :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김 대표의 개헌 발언을 “당 대표 되시는 분이 실수로 언급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

하지만, 누구의 말인지 실명은 기사에 없었습니다.

<녹취>김무성(새누리당 대표) : "(청와대에서 대표님 개헌 언급하신 게 실수로 하셨다고 생각 안 한다는 얘기를 갑자기 해서요...) 청와대 누군데?"

당시 언론은 익명 보도를 하면서도 익명을 비판했습니다.

<녹취> 문화일보 10.22 : "청‘여 대표 익명 공격’식으로 정국 제대로 이끌겠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21일 익명 보도를 요구하며 한 발언은 내용.형식 측면에서 의아하다... 박근혜 대통령이나 김기춘 비서실장의 의중이 실렸다고 해석될 수밖에 없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당청 논란으로까지 번졌지만 청와대는 공식 의견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녹취> 11월 6일(국회 예결위) : "(이사람 누구예요?) 홍보수석비서관이 하신 말씀으로 안다. 그것은 홍보수석의 개인적인 의견이라고 생각을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의 익명은 상대를 공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인터뷰>이재경(이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정보를 제공하는 쪽 입장에서 보면 실명으로 할 수 없는 얘기를 익명으로 대개 하는 거잖아요. 그 정보가 누구에게 해가 되지 않으면 괜찮은데,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누군가에게 타격을 주는 상황이 돼버리면 굉장히 비겁한 상황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기자들은 그런 특정한 사람의 매체에 대한 이용을 허용하는..."

미디어 인사이드가 3일간 6개 일간지의 정치.경제.사회 기사 1065건을 분석한 결과 35%인 378개 기사에서 익명의 취재원이 등장했습니다.

이 기사들에 나온 익명의 취재원은 443명. 청와대와 검.경찰 등을 포함한 정부 관계자가 31%(136명)로 가장 많았고, 취재원을 아예 적지 않고

알려졌다거나 전해졌다 등으로 표현한 경우도 24%(108명)나 됐습니다.

또, 기업 등 업계 관계자가 23%(104명) 정치권 관계자를 익명으로 한 사례도 5%(21명)등이었습니다. (전문가.단체.기타 등 17% 74명)

<인터뷰>김지영(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 : "실명으로 처리해도 아무 문제 없는데 공연히 습관적으로 익명으로 쓰려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고, 둘째는 취재 부족으로 추측성 보도를 할 때 익명을 많이 씁니다. 세 번째는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해서 자신의 의견이나 소속 언론사의 의견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터뷰>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해서 자기 의도한 내용으로 기사를 만들어가는 경우가 있죠. 그랬을 땐 사실 진실이 뭔지도 제대로 못 밝혀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왜냐면 취재원이 누군지 기자만 아는 그런 익명의 취재원을 동원했기 때문에"

물론, 실명을 밝히지 말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내부 고발자처럼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거나, 민감한 사안에서 배경을 설명하는 이른바 '백 브리핑’등의 경우입니다.

<인터뷰>신창호(국민일보 정치부 차장) : "백 브리핑을 할 경우에는 훨씬 더 취재원들이 말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더욱 깊은 내용들을 브리핑할 수 있거든요. 그리고 기자들 질문도 다양하게 수용할 수 있고...그런데 실명을 밝힐 경우에는 그렇게 충분히 얘기할 수가 없어요. 실명이 나갈 경우엔 취재원 개인의 비밀보호 문제도 있고 그런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이유로, 지난해, 청와대가 대통령 생각과 동떨어진 내용이 청와대 관계자라고 기사화 된다며, 익명보도를 하지 말라고 요구하자, 언론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녹취>한국일보 2013. 4월 4일 8면 : ““취재원 보호 ‘익명 보도’ 못하면 언론 자유 위축“ 비판 쏟아져 청와대가 “비판적 목소리를 차단하기 위해 실명 보도를 요청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기자들은, 정보공개나 취재의 제약이 많은 것도 익명 보도의 원인으로 지적합니다.

<인터뷰>신창호(국민일보 정치부 차장) : "취재환경 자체가 굉장히 열악해졌고, 정보가 막히다 보니까 이제 익명 보도가 더 많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관한 신뢰성도 좀 떨어져 가는 것 같고, 그게 비단 청와대뿐만이 아니고 일반 정부 부처들 같은 경우에도 굉장히 방문이나 면담이나 그런 것들이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상당히 많이 있거든요."

2003년 제이슨 블레어 기자의 대규모 기사 조작 사건으로 큰 타격을 받았던 뉴욕타임스.

이 신문은 이후 마련한 신뢰도 확보 방안에서 익명 보도는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전하며, 원칙적으로 익명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녹취> 뉴욕타임스 2005. : "우리의 신뢰성 확보 방안"

우리는 뉴스 가치가 있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을 만한 대안이 없을 때를 제외하고는 익명의 취재원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도 익명 취재원과 관련한 기준은 있습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취재원의 명시와 익명 조건>

기자는 취재원이나 출처를 가능한 한 밝혀야 한다.

공익을 위해 부득이 필요한 경우나 보도 가치가 우선하는 경우, 취재원이 요청하는 익명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경우 취재원이 익명을 요청하는 이유, 그의 소속기관, 일반적 지위 등을 밝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익명 보도를 없앨 수는 없지만, 원칙과 노력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인터뷰>이재경(이대 언론홍보영상학부교수) : "내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취재수단을 동원했지만 익명 취재원 밖에 없다 그럴 경우엔 왜 이 사람을 꼭 써야 하는지를 기사 속에서 설명해주란 내용이 있습니다. 그 정도만 지켜도 굉장히 품격이 다른 뉴스를 만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김지영(신문윤리위원회 심의위원) : "소속 기자들에게 익명을 쓰지 말고 실명을 써야 한다는 이런 보도 윤리를 교육훈련을 가르쳐야 되고. 정부 부처나 정당이나 법원이나 이런 곳에서 같이 이런 논의를 확산하는 것이 필요하다."

익명 보도는 기자의 의도와 편의를 위해 이용되는 손쉬운 수단이 아니라,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가치있는 정보를 전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